


(서울=뉴스1) 정수영 기자,정윤경 기자,성소의 인턴기자 = "2002 월드컵은 저 개인뿐 아니라 한국축구와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터닝포인트였어요."
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영표(42). 이 '레전드 수비수'는 당시 월드컵을 회상하며 "우리 안에 '하나를 이루는 DNA'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계기였다"면서 "스포츠가 한 나라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"고 말했다.
한일월드컵은 그의 인생에도 분수령 같은 사건이었다. "히딩크 감독님과 좋은 선수들을 만났고, 유럽에 진출하는 기회가 됐으니까요." 월드컵 이후 오늘 의 토토는 PSV아인트호벤과 토트넘 홋스퍼를 거쳐 밴쿠버 화이트캡스에 이르기까지 세계무대를 치열하게 누볐다. '매직드리블' '한국인 프리미어리거 2호' '대한민국 최고의 윙백'. 호평이 쏟아졌다.
빛나는 성공스토리를 써온 듯 보이지만, 그는 사실 축구계의 '실패부자'다.
◇"나는 안 되는구나…노력한 게 억울했다"
축구인생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1998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. "4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건국대 축구부 주장이 됐어요. 당시 저희 축구부에 올림픽 국가대표가 6명 있었는데, 5명은 제 친구였고 1명은 후배였죠." 주장임에도 국가대표가 아니었던 오늘 의 토토는 열등감과 패배감에 마음이 복잡했다고 밝혔다.
그 복잡한 마음은 그해 겨울, 결국 폭발했다. "날씨가 추워지니 개인훈련을 나오는 선수들이 없었어요. 저 혼자 땀 뻘뻘 흘리며 개인운동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. '다른 친구들은 따뜻한 숙소에서 쉬고 있겠지? 지난 10년간 내가 했던 노력은 뭐지?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.' 노력한 시간이 억울해 펑펑 울었어요."
그는 '연습벌레'로 유명했다. 중학생 시절 밤마다 드리블 연습을 하고, 고교 땐 민첩성과 체력을 기르려고 '줄넘기 2단뛰기 1000개' '새벽등산'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. 그러나 그렇게 노력을 해도 발전은 더디게만 느껴졌다. '나'만 제자리인 것 같은 불안함, 노력이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함. 1998년 겨울, 그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 이유였다.
노력하는 인생엔 역전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. 그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몇 주 뒤, 올림픽 대표팀의 한 선수가 다치는 바람에 그에게 테스트 기회가 왔다. 결과는 '합격'. 그리고 1999년 6월 오늘 의 토토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.
◇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
유럽리그에서 뛰는 동안에도 "가뭄에 콩 나듯 이겼고 대부분 실패한 기억밖에 없다"고 털어놨다. 그는 그러나 숱한 실패를 겪고 나니, 실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. "중요한 경기에서 질 때마다 '내 축구인생은 끝났다'라고 생각했어요.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실패가 '끝'이긴커녕 성공으로 이끄는 징검다리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죠."
그는 모든 실패가 다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. "실패가 성공으로 연결되려면 '시간'이 필요해요. 우리는 빨리 결과를 보려고 하는데 조급해선 안 돼요. 노력 즉, '땀의 양'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고, '고통'도 반드시 있어야 해요. 마지막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'인내'도요."
◇"재능이 없어 더 전력질주했다"
오늘 의 토토는 축구 때문에 수차례 절망했지만 단 한 번도 축구를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.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'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?' 고민했고, 노력으로 돌파해갔다. "재능이 없어 노력밖에 답이 없었다"고 그는 말했다.
경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고가 나 팔이 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, 토트넘에서 뛸 땐 벤치를 지켜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. 그 시간을 견디며 마지막까지 그라운드의 왼쪽 측면을 지켰다. 2013년 10월, 이 '성실한 수비수'의 은퇴전을 기념하기 위해 밴쿠버 화이트캡스가 특별제작한 경기티켓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. '우리의 전부, 우리의 영광(Our all, Our honor).'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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